수익농사, 스테이킹, 그리고 유동성 공급

Atomrigs
17 min readFeb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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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3년 말 코인판에 광부로 취업을 했었습니다. 캘리포니아로 금광을 찾아 떠나던 서부시대 개척자들처럼 우리는 코인을 캐기 위해 이 금광 저 금광을 찾아 다녔습니다. 광산은 크게 대형 기계(ASIC) 위주로 캐야 효율이 생기는 비트코인류와 곡괭이 같은 소형 도구(GPU)로만 가능한 이더류의 광산 두 가지로 압축되었습니다. 가끔 손(CPU)으로만 캘 수 있는 희한한 광산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 손이 너무 많이 가서 인기가 금방 시들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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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인들 가격이 상승하면서, 폐업했던 금광들이 다시 문을 열고는 있다지만, 인기의 대세는 그래도 농부입니다. 광부들이 주로 채굴 장비의 성능과 스케일에 의존했다면, 농부들은 얼마나 큰 토지와 씨앗을 굴릴 수 있나 하는 스케일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습니다. 물론 적은 자본금으로도 비상한 머리를 잘 굴리면, 농장에서 담보 없이 플래시 대출을 받아, 다른 농장의 작물을 사고파는 차익거래를 할 수도 있는 매우 스마트한 농장 시스템도 갖추고 있습니다.

https://fi.pinterest.com/pin/432486370464462861/

그런데 농부들이 많아지다 보니,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데요, 뭔가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더 주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과해지다 보면 애초에 왜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까지 발생하는데요, 무슨 이야기인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광부 수익은 원천은 블록체인을 유지하기 위한 블록의 생산과 검증에 대한 보상입니다. 그렇다면 농부 수익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농부 수익의 주요 원천은 (1) 코인 간의 거래를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유동성을 제공(마켓메이커에 유동성 공급)하고, 거래자가 내는 수수료를 나눠 가진다. (2) 코인을 다른 사람에게 대출해주고 이자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농부라고 표현했지만, 금융업 형이지요. 금융업에 씨앗(시드)을 제공하니 그래도 농부는 농부입니다.

https://blog.coincodecap.com/defi-yield-farming-and-liquidity-mining

(1) 유동성 공급에 대한 보상은 매우 직관적입니다. 왜 보상이 주어져야 하고, 어떻게 보상을 계산할지 생각해 봅시다.

A는 비트코인 1개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이더리움 10개로 바꾸고 싶다고 가정해 봅시다. 일대일로 거래하려면 이더리움 10개를 가지고 있고 이것을 비트코인 1개와 바꾸려는 다른 상대편 B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A와 B가 서로의 필요를 만족시키면서 거래가 성립됩니다. 하지만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지 못하다면(유동성이 부족하다면), A는 있지만, B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B가 있다 하더라도, B는 이더리움 10개를 주고, 비트코인 2개를 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거래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블록체인 위에 주식시장의 오더북 같은 것을 만들고 탈중앙화 거래소를 만들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사고팔려는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서로 원하는 가격이 차이(slippage)원하는 가격 범위에서 원하는 양 만큼의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는 유동성의 depth 역시 확보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온체인에 모든 정보가 올라가니, 오더북에 거래희망 정보를 다 올리는 행위 자체가 가격에 영향을 줍니다. 변화하는 가격에 맞게 오더 정보를 바꾸려고 해도 추가적인 가스비가 듭니다. 그래서 탈중앙화 거래소 (DEX)들은 중앙화된 거래소에 비해 미미한 정도의 시장 점유력 밖에 가질 수 없었습니다.

https://blog.bancor.network/unlocking-single-token-exposure-in-automated-market-maker-liquidity-pools-40750968b2ee

이러한 애로 사항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 자동화된 마켓메이커 (Automated Market Maker, AMM)입니다. 매매 가격을 시장의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하는 오더북에 의존하는 대신에, 자동화된 룰에 의해 결정하자는 메커니즘을 만들자는 겁니다. 스마트 컨트랙이 이러한 룰을 공평하게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구현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누군가가 임의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합의한 룰에 따라 예외 없이 모두에게 적용하는 것이지요. 거래 성립을 위한 가격이 자동으로 결정된다면, 다른 한 축은 거래할 수 있는 물량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유동성 공급자 (liquidity provider, LP)가 담당합니다. 유동성 공급자는 거래에 필요한 물량을 대주고, 수수료를 따먹는 거죠. 앞에서 이야기한 예를 기준으로 보자면, A는 비트코인 1개를 이더리움 10개로 바꾸고 싶습니다. 오더북처럼 다른 상대편 B가 없더라도, A는 스마트 컨트랙에 비트코인 1개를 넣으면, 자동으로 이더리움 10개가 나옵니다. 물론 받을 이더리움 개수는 자동 가격 결정 메커니즘에 의해 계산됩니다. 1:10 이라는 비율 자체가 현재 시장가격이라고 전제하는 겁니다. 만일 현재 외부의 시세가 1:5 인데 이 스마트컨트랙은 1:10으로 계산해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무조건 비트코인을 넣어서 이더리움을 두 배로 받아 다른 곳에 팔아 거의 리스크가 없는 차익을 챙길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익거래 덕분에 AMM 은 계속해서 자동으로 시장가격에 싱크됩니다.

자 여기서 A가 비트코인 1개를 이더 10개로 바꿔줄 수 있도록 유동성 공급자가 스마트컨트랙에 거래에 필요한 비트와 이더 물량을 올려놓았기 때문에 A는 다른 상대편 B 없이도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었습니다. A는 탈중앙화된 거래방식을 통해 거래 상대편 B가 없이도, 거래를 편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수료로 거래금액의 0.3% 정도를 기꺼이 냅니다. 이렇게 받은 0.3% 의 수수료를 유동성 공급자가 가져가는 겁니다. A가 거래를 끝내고 난 후, 마침 B 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번에는 이더를 주고 비트를 받아 가려고 합니다. 현재의 변환율에 따라 스마트 컨트랙이 이번에는 이더를 받고 비트를 내주고 다시 0.3% 수수료를 받습니다. 이렇게 비트와 이더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유동성 공급자는 계속 수수료를 나눠 갖습니다. 만일 유동성 공급업자가 충분히 들어 온다면, 탈중앙화 거래소가 가진 slippage 와 depth 문제도 효과적으로 해결됩니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거래자가 이 시장에서 원하는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게 됩니다. 거래가 많아지면 챙기는 수수료 수입이 많아지므로 다시 더 많은 유동성 공급업자가 들어오게 되고, 이것은 선순환적으로 시장을 더욱 활성화하고 안정적으로 만듭니다.

AMM을 구현하는 로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처음 주목받은 것은 뱅코(Bancor)라는 농장이었습니다. 코인 페어의 상대적 가격을 스마트 컨트랙이 자동으로 결정지울 수 있도록 만들었고, 꽤 인기를 누렸지만, 문제는 가스비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었고, 유동성 공급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직관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또한 가격 결정구조에 자신들의 코인을 기축으로 사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다 보니, 이 코인 가격 하락 리스크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컸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유니스왑 이라는 새로운 농장이 그 단순성과 직관성, 그리고 작은 가스사용량 덕분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유니스왑 농장도 초기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거래자자 많지 않으니, 수수료 수입이 얼마 안 되고,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유동성을 공급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https://uniswap.org/docs/v2/core-concepts/pools/

하지만 몇몇 코인 페어에 쌓인 유동성 양이 일정 수준에 이르자, 선순환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거래 수수료뿐만 아니라, 추가로 별도의 코인(UNI)을 발행해, 유동성을 많이 제공할수록 더 많은 UNI를 얻도록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UNI 코인은 유니스왑 농장의 거버넌스, 즉 운영을 위한 투표권 행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UNI의 독자적인 활용처, 즉 유틸리티적인 가치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사실 UNI 의 거버넌스 기능에 매료되었다기보다는, 그걸 시장에 팔거나 보유함으로써 생기는 투자이익의 매력이 훨씬 크게 작용했고, UNI 가격이 상승하니, 더욱더 많은 유동성 공급자가 붙기 시작했고, 그렇게 되니 거래 시장이 더욱 안정화되는 선순환이 더욱 가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유니스왑 농장의 규모가 한번 커지고 나니, UNI를 별도로 주지 않는 코인 페어의 거래량도 크게 늘고, 여기서 생기는 수수료 수입만으로도 유동성 공급자를 유인할 만큼이 되었습니다. UNI 가 선순환을 가속하는 스타터 역할을 했지만, 그것 없이도 시장이 지속가능한(sustainable) 안정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특정한 코인페어(예를 들어 비트와 이더)을 서로 교환하려는 실제 거래 수요와 그 거래에서 생기는 수수료를 먹으려는 유동성 공급자가 균형을 이루면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특정한 페어의 거래 수요가 줄어들면, 이 페어에 공급되는 유동성은 과잉상태가 되고 수수료 수익률이 떨어지게 되니, 자연스럽게 더 수익률이 높은 페어로 옮겨갈 겁니다. 여기서 농부들의 지속적인 합리적인 선택이 시장을 새로운 균형으로 이끌게 되겠죠.

http://thecryptoplatform.com/uniswap-launches-uni-governance-token/

(2) 유동성 공급의 또 다른 수익의 원천은 대출 이자라고 했습니다. 유니스왑같은 농장뿐만 아니라, 대출 시장에서도 수익이 생깁니다. 왜 코인을 대출할까요? 코인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대출은 레버리지를 위한 것입니다. 내가 어떤 코인 가격이 올라갈지 내려갈지에 대해 남들보다 더 잘 맞출 근거가 있다면, 남의 코인을 빌려서라도 수익을 더 키울 수 있겠죠. 공매도(short)를 위해서도 대출이 필요합니다. 코인 가격이 내려갈 것은 자명한데, 내가 가진 코인이 없으면, 빌려서 먼저 팔고, 가격이 내려가면 싼 가격에 원래의 개수를 구매해서, 나중에 갚으면 이익이 생기겠지요. 코인을 빌려주는 쪽에서는 원래의 개수를 돌려받는 것을 보장받으면서도, 이자를 받을 수 있으니 좋고, 빌리는 사람은 이자를 내지만, 차익이 이보다 더 크리라 기대하니 서로 좋습니다. 물론 예측이 틀리면, 빌린 사람은 담보로 맡긴 코인을 다 잃을 수도 있습니다. 작은 담보로 이보다 더 많은 코인을 대출받으니, 그만큼 예측이 틀릴 때 잃게 되는 리스크도 커집니다. 단, 대출을 해주는 쪽은 스마트 컨트랙트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한, 코인을 잃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자동청산 메커니즘이 작동할 테니까요. 즉, 시스템 리스크가 비용이지 대출자에 대한 신뢰나 평가는 필요 없습니다.

이러한 대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대출풀에 코인을 제공), 여기에서 이자를 받는 것은, 그 이자의 근거가 분명히 있습니다. 만일 아무도 대출을 받지 않는다면, 수익은 0 입니다 (사실은 가스비만큼 손해). 누군가 비용을 지불해야지만 수익이 발생합니다.

(3) 이와 관련해서 스테이킹 수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동성을 공급하고 수수료 또는 이자를 받는다는 개념과 스테이킹에 코인을 넣고 거기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는 개념이 일견 유사해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대단히 다른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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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킹은 Proof of Stake (PoS)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Proof of Work (PoW)가 더 효율적인 하드웨어 경쟁을 통해 블록 생성권을 확보하는 대신에, PoS 에서는 담보를 맡긴(Staking) 검증자들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블록을 생성하게 하는 시스템입니다. PoW 에서 잘못된 블록을 캐기 위해 해시파워를 쓰면, 그 블록은 채택되지 않게 되므로, 거기에 소비한 전기료와 고정비 감가상각 손해가 생깁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블록을 서로 합의하는 것이 이익이 되니 체인이 유지가 됩니다. 반면 PoS 에서는 잘못된 블록을 만들거나, 합의를 어렵게 하면 (중복투표 등), 담보로 맡긴 코인을 태워버립니다. 담보를 잃지 않고 보상을 받으려면 제대로 된 검증을 해야 하고, 합의해야 합니다. 즉 스테이킹은 PoS 블록 검증과 합의를 강제하기 위한 담보물입니다. 스테이킹에 대한 보상을 주는 이유는 이러한 검증과 합의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이지, 담보를 맡겼기 때문에 이자로 주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상은 PoW 와 마찬가지로 신규로 코인을 발행해서 (시뇨리지) 나눠 줍니다. 누군가가 수수료로 낸 걸 모아서 줘도 충분하다면, 추가 발행이 필요 없겠지만, 아직 퍼블릭 체인이 그 정도 수준까지의 네트워크 활용도를 달성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비트코인도 신규 발행 보상을 중단하는게 2140년 이니, 우리 살아생전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도, 신규 발행이 없는 체인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스테이킹 수입은 패시브한 이자 수익이 아니라, 액티브한 활동에 대한 보상이라는 점입니다. 중앙화된 거래소가 PoS 스테이킹을 대행해주겠다는 서비스가 나오면서, 단순히 코인을 남에게 맡기기만 해도 이자처럼 보상이 나오는 경우가 있어서 더욱 유사해 보이기는 합니다만, 결국 이 보상의 출발점은 체인 유지에 필요한 블록생성과 검증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만일 거래소가 PoS에 스테이킹하겠다고 광고하고, 사용자들의 유동성을 끌어모았지만, 실제 PoS에서 참여하지 않는다면, 또는 최소한 누군가 PoS에 참여하는 주체에게 이 유동성을 제공하고, 거기에 대한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면, 코인을 모아두었다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수익을 창출할 수 없습니다.

(4) 이제 다시 농장 이야기로 되돌아봅시다. 유니스왑의 인기 덕분에 많은 유사한 농장들이 생겨나고, 이더리움 체인 밖에서도, 다른 체인들에서도 이러한 농장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다른 체인 간에 유동성을 넘나들 수 있게 하는 “월담” 이 가능해지도록 다리(브릿지)가 여기저기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언제 붕괴할지 모르는 허약한 다리도 있고, 나름 상당한 신뢰를 확보한 게 튼튼해 보이는 다리도 있습니다. 이더리움 체인을 중심으로 주변 체인 간에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여기저기 벽지에도 농장들이 생겨나고, 유동성 유치 경쟁이 치열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유동성 보상의 근거, 즉 거래 수수료의 분배를 통한 시장 균형의 달성이 주목표가 아니고, 추가 코인(거버넌스 코인이라는 명목하에)을 발행하고, 이를 펌핑하는 작전을 통해 수익률을 과장하게 만드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실제 해당 코인들을 거래하는 수요가 거의 없는데, 신규 코인을 받아 팔아 생기는 이익을 취하기 위해 유동성이 몰려드는 거지요. 일 년에 수천 퍼센트의 수익률을 자랑합니다. 물론 유니스왑의 경우처럼 선순환을 위한 스타터의 역활을 해주는 계기로서 작동하고, 그 결과로 별도의 코인을 안 줘도 수수료만으로도 시장이 유지될 만큼의 거래가 활발해진다면 인센티브를 뿌리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있으면, 추가 코인의 가격을 떠받치는 작전 세력의 펌핑이 중단되고 나면, 이 농장은 급속히 무너집니다. 이 코인을 가지고 거버넌스에 참여할 이유도 없고, 애초에 관심도 없습니다. 유지 가능한 시장형성에 실패하고, 추가로 발행된 코인을 다시 재활용하는 메커니즘이 없다면 대부분의 이런 농장의 생명이 길게 가기는 힘듭니다. 유동성 과잉이 생기고, 추가 발행된 코인의 수요가 없고, 거래할 코인의 수요는 없고, 수수료 수입으로 유지가 안 되고, 결국 망합니다. 추가 발행된 코인을 다시 “스테이킹” 하게 해서 위기를 지연시키는 수법이 사용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오래가기 힘듭니다.

(5) 결국 농장도 사용처가 없는 추가코인 발행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고, 수수료 수입의 크기가 시장을 지탱할 만큼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더 촛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다행인 것은 코인 시장에 들어온 유동성 규모가 아직은 매우 작다는 것입니다. 기존 금융시장에 있는 많은 자산들과 금융거래 수요가 코인시장으로 들어오게 되면, 거래 수수료 수입이 지금보다 수백 배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까지는 중앙화된 주체가 혼자 다 먹고 있던 수익이 탈중앙화된 주체들에게 공정하게 배분된다면, 유동성 공급자들이 탈중앙화시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이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유니스왑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유니스왑이 최종적인 정답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더욱 더 개선된 모델들이 앞으로도 많이 나올 것입니다. 다만 농장을 평가할 때, 그 시스템의 원천이 되는 수익이 어디서 발생하고, 어떻게 커질 수 있는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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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뿐만 아니라, 그냥 아무것에나 다 스테이킹이라고 이름 붙이고, 이자 수익을 주겠다고 광고하는 코인이나 업체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스테이킹이라고 하면, 실제 체인(또는 시스템)의 블록생성과 검증에 그 유동성이 사용되는지 확인을 해봐야 합니다. 또는 누군가에 이 유동성에 대해 지불하는 주체가 없다면, 이러한 가짜 스테이킹에서 나오는 수익은 작전 세력에 의한 펌핑으로 유지되는 허구로 끝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마구 발행해서 뿌리는 코인을 보지 말고, 그 뒤에서 이 코인의 가격을 유지할 실제적인 가치사슬을 봐야 합니다. 블록생성에 관여하지도, 유동성을 활용한 수익구조도 없는 경우, 신규 코인을 발행할 명분으로 많이 활용하는 게 거버넌스인데, 이것 역시 많은 부분 과장되고 껍데기 치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이러한 농장은 가능한 한 인위적인 투표에 의한 거버넌스의 필요성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습니다. 투표 참여율 확보도 어렵고, 대주주의 오용도 쉽고, 관리의 복잡성도 그렇고 여러 가지 단점도 많습니다. 물론 디파이 시스템의 설계가 매우 어렵고 스마트 컨트랙트의 특성상 업데이트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성장 과정에서 변수들을 바꾸어야 할 때도 있고, 뭔가 정책적인 합의 내용을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목적으로 발행된 코인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주된 이익 동기가 된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껍떼기 스테이킹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논리는 시중에 있는 유동성을 거래에 참여하지 못하게 해서 코인 가격을 방어한다는 것입니다. 추가 코인을 발행해서 보상을 주는 이유가 코인의 유동성을 없애기 때문이라는 건데, 말하자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 보상을 준다는 논리와 다름 없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렇게 확보한 유동성을 이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대출해주고, 그 이자를 받아서 분배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분배되는 금액이 여기에 유동성을 묶어둘 만큼의 유인이 된다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단지 묶어 두었기 때문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을 토큰으로 발행해준다는 것은 문제를 지연시키는 것일 수는 있어도 결국 이 코인의 가격 붕괴는 필연적입니다. 다만 조삼모사에도 잘 속는 사람들이 있어서, 당장에 이자를 많이 준다는 것에만 눈이 어두워 이게 결국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코인 가치를 희석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발행된 코인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스테이킹 풀에 다시 넣도록 해서 무한 반복하려는 시도를 해보지만, 결국 공급 과잉된 이 코인의 가격은 한번 역전되기 시작하면 바로 다 무너집니다. 보유해서 이자로 받을 수 있는 이익보다, 코인 가격 낙폭이 커지면, 가격을 떠받칠 수 있는 다른 메커니즘이 없기 때문에 연쇄적으로 악순환이 되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코인 발행의 명분이나 구실은 달라져도 본질적인 구조가 비슷한 이러한 사례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이 경험해 왔습니다.

디파이 시장은 앞으로도 훨씬 더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안정성을 확보해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눈속임에 의한 스캠성 프로젝트들 또한 반복적으로 늘어 날 것이고, 이런 지뢰들을 잘 피해 나가는 것이 훌륭한 농부가 되는 비결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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